철새 이동도 자동로밍? 가락지서부터 통신기기까지···철새 위치추적의 역사

송윤경 기자
일러스트|김상민 기자

일러스트|김상민 기자

가느다란 두 다리를 해안에 디딘 채 부리로 물속을 휘휘 젓는다. 몸은 새하얗지만 번식기엔 노란 장식깃이 머리와 가슴에 돋아나는 새. 길게 뻗은 부리의 끝은 넓어 마치 구둣주걱 같다. 천연기념물인 ‘저어새’다.

많이 잡아도 세계에 3300여마리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저어새 중 한 마리가 대전의 한국환경생태연구소에 지난해 12월30일 ‘문자’를 보내왔다. ‘22.887288, 120.1946033, 0….’ 마치 암호 같은 이 숫자열의 의미는 ‘나 여기 있어요’쯤 된다. 환경생태연구소는 지난해 여름 전남 영광의 칠산도에서 저어새 다섯 마리에게 통신기기를 달았다. 정확히 말하면 이 문자는 저어새에 부착된 통신기기가 보내온 것이다. 지도를 펼쳐 숫자가 가리키는 위도와 경도를 짚어보니 발신지는 대만 타이난 남부의 바닷가다. 칠산도에 있던 저어새가 겨울을 나기 위해 1600㎞ 이상 떨어진 따뜻한 타이난으로 날아간 것이다. 속도가 0인 것으로 보아 가만히 쉬고 있거나 먹이를 찾는 상태였을 것이다.

인간이 그어놓은 국경 따윈 관심 없다는 듯 수만리 하늘길을 가로지르는 새떼는 경이로움을 안긴다. 황지우 시인은 1983년 발표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서 군부독재 치하의 ‘우리’와 새를 이렇게 대비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고.

을숙도의 그 흰 새떼는 어디에 닿았을까. 기술이 발달한 지금 그 새들에게 통신기기를 부착한다면 문자를 보내올지도 모른다. 국경을 넘어가도 자동로밍되니 말이다.

근현대 조류 연구자들은 장거리를 이동하는 철새의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왔다. 19세기엔 새의 다리에 ‘가락지’를 달았다. 누가 언제 어디서 가락지를 달았는지 일련번호로 새겨놓으면, 이국의 다른 연구자가 발견해 확인하는 식이다. 가락지를 이용한 연구는 지금도 널리 쓰인다. 지난해 11월 강원 강릉에서 가락지를 한 황새가 발견됐다. 2016년 일본 효고현 야부시에서 방사한 수컷 황새였다. 당시 방사에 참여했던 일본 어린이들이 “앞으로 나아가라”는 뜻의 ‘스스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고 한다. 스스무의 행적은 그 후 확인되지 않다가 1년이 지난 뒤 한국의 강릉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가락지로는 이동경로를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1960년대부터는 초단파(VHF) 추적장치가 동원됐다. 소형 발신기를 야생동물에게 달아 풀어준 뒤 연구자들이 안테나를 들고 신호음이 나는 방향으로 나아가 동물의 위치를 더듬는 식이다. 초단파 추적장치는 반경 1㎞ 안에서만 추적되기 때문에 주로 포유동물에 쓰인다. 2012년 소백산에서 방사한 여우의 움직임을 뒤쫓을 때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이 이 장치를 활용했다.

지난해 여름 전남 영광의 칠산도에서 한국환경생태연구소 직원이 저어새에게 위치추적 통신기기 ‘WT300’를 부착한 모습. 한국환경생태연구소 제공

지난해 여름 전남 영광의 칠산도에서 한국환경생태연구소 직원이 저어새에게 위치추적 통신기기 ‘WT300’를 부착한 모습. 한국환경생태연구소 제공

1980~1990년대부터는 인공위성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야생동물에 부착된 발신기에서 나오는 전파를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의 지구관측위성 등이 감지하는 방식이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경로 추적이 가능하고 발신기도 가볍다. 하지만 인공위성 사용료가 개체당 1000만원에 이를 정도로 비싸고 오차도 큰 편이다.

21세기엔 가격이 싼 통신기기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GPS 인공위성으로부터 위치정보를 받아 저장해놨다가 이동통신 기지국에 전송하면 연구자가 웹으로 데이터를 확인한다. 사람이 들고다니는 휴대전화에서 위치추적 기능만 뽑아낸 장치라고 생각하면 쉽다. 한국에선 이한수 환경생태연구소장과 백운기 국립중앙과학관 박사가 2010년부터 통신추적장치 개발에 나섰고 2014년 상용화를 이뤄냈다. 2015년부터는 통신기기를 단 야생동물이 국경을 넘어가도 다른 국가의 기지국을 쓸 수 있게끔 자동로밍되는 기술까지 보태졌다. WT300이라는 이름의 이 통신기기는 대당 180만원가량 한다. 지난해 말 저어새의 소식을 알려온 기기가 바로 이것이다.

지난달 15일 찾은 환경생태연구소에서 주로 장거리 이동 철새들에 부착되는 WT300을 살펴봤다. 가방을 메듯 양 날개에 고리를 걸면 새의 등 위에 통신장치가 고정된다. 이 통신기기는 네 시간마다 위도, 경도, 해발고도, 이동속도를 전송해준다. 태양광 패널이 있어 길게는 3년간 통신을 할 수 있다. 철새가 통신협정이 맺어지지 않은 북한 같은 곳을 날아가게 되면, 다른 국가에 도착했을 때 그동안의 정보를 모아놨다가 한번에 전송한다. 환경생태연구소는 바다거북에게 부착할 수 있는 통신기기도 개발하고 있다.

통신기기를 이용해 추적하면서 연구자들은 그동안 추정만 해오던 것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독수리를 오래 연구해온 백운기 박사는 2015년 5월 몽골 고비사막 부근의 이크나트라는 지역을 찾았다. 이곳의 독수리들은 겨울이 되면 한국의 철원, 파주 등 민통선 지역으로 날아온다. 연구팀은 이크나트의 절벽을 타고 올라 둥지에서 떠나기 직전의 새끼에게 조심스럽게 통신기기를 달았다. 예전에는 ‘윙태그’라고 하는 인식표를 날개에 달았는데 이 장비로는 이동경로를 알 수 없었다. 통신기기를 단 후에는 독수리떼가 어디를 거쳐 한국 땅에 오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독수리들은 22일 동안 중국의 츠펑(赤峰), 랴오양(遼陽)을 거쳐 북한 신의주, 평성을 지나 휴전선을 넘는 비행을 통해 매년 겨울 민통선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한국에서 여름을 보내는 왜가리에게 위치추적통신기기를 달았더니 겨울에는 미얀마까지 날아가 월동을 하고 온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지도의 붉은 선은 왜가리의 이동경로.   한국환경생태연구소 제공

한국에서 여름을 보내는 왜가리에게 위치추적통신기기를 달았더니 겨울에는 미얀마까지 날아가 월동을 하고 온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지도의 붉은 선은 왜가리의 이동경로. 한국환경생태연구소 제공

백 박사에 따르면 한국에 겨울을 나러 오는 독수리들의 90%는 어린 개체들이고 10%만 성체다. 봄이 오면 독수리들은 몽골로 돌아가 곳곳에 퍼져 있는 번식지들을 순회한다. 매년 반복되는 패턴이다. 백 박사는 “마치 어떻게 번식을 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교육을 받으러 다니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5살이 되면 독수리는 겨울에도 더 이상 한국으로 오지 않는다. 백 박사는 “이러한 사실은 추적기를 달고 나서 더욱 명확하게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초원수리가 히말라야산맥을 넘나든다는 것도 통신기기 추적을 통해 알아낸 사실이다. 이한수 소장은 “2016년 몽골에서 초원수리에게 WT300을 달았더니 이 새들이 히말라야를 넘어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 부근에서 겨울을 지내고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초원수리는 여름이 되면 다시 시베리아 부근으로 돌아가 번식을 한다. 국내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왜가리 일부는 겨울에 미얀마까지 날아가 월동을 하고 온다는 사실도 통신기기를 통해 지난해 확인했다.

이 소장은 같은 종의 새라도 환경에 따라 성격이 다르다고 말한다. 한국의 청둥오리는 사람을 경계하지 않지만, 러시아의 청둥오리는 사람이 200~300m 거리에 있어도 놀라 도망간다는 것이다. 청둥오리 사냥이 보편화된 까닭이다. 그래서 때로는 러시아로 북상한 청둥오리가 총에 맞아 신호가 끊길 때도 있다.

통신기기의 무게는 부착할 새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가장 작은 것은 약 21g이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4.6㎝, 3.6㎝, 1.6㎝인 이 기기가 새들에게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전자파 피해는 없을까. 이 소장은 “통신량이 적어 개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고, 장치를 거부하는 새는 부착했다가도 빼버린다”면서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경로를 확인하고 꼭 보존해야 하는 국내외 철새 서식지를 알려면 추적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갯벌 매립 등으로 빠르게 사라져가는 철새들의 서식지를 파악하고 남아 있는 지역만이라도 잘 보존하기 위해 철새의 삶을 정밀히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생동물 보호하려 단 위치추적기, 밀렵에 악용 ‘죽음의 족쇄’ 되기도

과학자들은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위치추적 장치를 이용하지만 거꾸로 이 정보가 밀렵꾼에게 이용당할 가능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과학자들이 수집한 위치정보를 활용해 멸종위기 동물을 사냥하거나 이용하려 했던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내셔널지오그래픽’이 게재한 ‘야생동물 추적 연구가 밀렵꾼에게 이용될 수 있다’는 기사는 과학자들의 이러한 우려를 담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2013년 인도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인도의 판나 호랑이 보호구역에서 호랑이의 위치 파악을 맡고 있는 책임자는 당시 메일 한 통을 받았다. 희귀동물인 이 호랑이의 위치정보를 공유하는 e메일 계정에 누군가가 접속하려 시도하고 있다는 경고 메일이었다. 깜짝 놀란 이들은 벵갈 호랑이에게 접근한 사람이 있는지를 찾기 위해 숲속에 드론을 띄웠다.

캐나다에서는 한 사진작가가 초단파(VHF) 수신기를 갖고 공원 안으로 들어와 전파 송신장치를 달고 있는 곰, 늑대, 엘크를 찾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이후 이 국립공원에선 VHF 수신기 반입이 금지됐다. 오타와 칼턴대의 스티븐 쿡 생물학 교수는 ‘동물 위치추적의 문제’라는 연구보고서에서 이러한 위치정보의 역이용 사례를 들며 “과학계가 위치정보의 오용 가능성에 충분히 대비하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위치추적 장치가 사냥꾼을 잡아내는 데 쓰인 사례도 있다. 2015년 미국의 한 치과의사가 짐바브웨의 국민사자 ‘세실’을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인간의 밀렵과 서식지 파괴로 사자의 개체수는 지난 반세기 동안 45만마리에서 2만마리로 급감했다. 과학자들은 세실에 위치추적 장치를 달아 그를 보호해왔다. 세실은 짐바브웨에서 방문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존재였다.

미국의 치과의사는 사냥 전문가들과 함께 동물 시체를 매단 트럭을 타고 세실을 공원 밖으로 유인했다. 그리고 세실의 머리를 자르고 껍질을 벗긴 뒤 사라졌다. 하지만 이들의 신원은 위치추적 장치 때문에 발각되고 말았다. 세실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던 옥스퍼드대 연구진들이 지역 경찰에게 세실의 위치를 알렸고, 경찰이 이들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치과의사와 사냥꾼들이 자신들의 흔적을 감추기 위해 위치추적 장치를 파괴하려 했다는 증거도 나왔다.

국제환경보호단체인 야생생물기금(WWF)은 멸종위기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통신기술을 이용한 위치추적을 한다. 이 단체가 추적하는 대표적인 동물 중 하나인 북극곰의 경우 북극해 주변 지역이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인간의 거주 지역이 늘면서 서식지가 크게 줄어드는 상황이다. 그래서 북극곰들에게 주파수 출력 장치를 달아, 위성정보를 활용해 이들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주된 관찰 대상은 암컷들이다. 어미 곰이 새끼를 낳는 것을 위성정보로 파악한 뒤 서식지를 현장조사 하는 식이다. 북극곰의 몸무게와 키, 치아와 골격의 성장 정도와 독성물질 오염 여부 등을 면밀히 추적한다.

야생동물의 삶을 짓밟은 인간은 이를 되돌리기 위해 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기술을 또 다른 파괴수단, 착취수단으로 삼으려는 인간들도 있다. 야생동물과 공존하려는 노력부터 전 인류가 공유해야 과학기술도 제대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